우리 가족은 참으로 여행을 좋아했습니다. 큰 아들이 채 1년도 되기 전 약 7개월의 나이에도 우리 부부는 여행가고자 하는 욕구를 참지 못해 그 어린 것을 데리고 싱가폴로 여행을 떠났으니까요. 둘째가 태어났을 때는 더 말할 것도 없었구요. 덕분에 이제 7살과 5살인 아이들은 여권에 꽤 많은 스탬프를 찍을 수 있었습니다. 이민까지 오게 되면서 여권을 세번이나 바꾸었네요. 제가 처음 비행기를 타본 것이 중학교 때였으니 불과 한 세대만에 참 많은 것이 바뀐 셈입니다.
어쨌든 우리 가족은 (많이 다니신 가족에 비하면 보잘 것 없지만) 여행을 무척 좋아하고 자주 다녔습니다. 항공사에 다녔던 덕분에 오히려 더 그랬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인지 우리 가족은 이민을 결정했을 때에도 그리 혼란스럽지 않았습니다. 그냥 뭐 여행 한번 떠나자는 기분이었습니다. 세상엔 너무 많은 나라와 너무 많은 살고싶은 도시들이 있는데 일년에 한 곳씩 살아본다고 해도 평생을 못 살아볼 나라가 너무나 많다는 것이 제 '주의'였다고나 할까요.
저는 결혼 이후 줄곧 이민 생각을 품고 살았지만 일년에 보름이나 한달이랄까 열병을 앓고나서 정신을 차리고 직장 생활에 전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뭐에 홀렸는지 2009년의 열병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습니다.
정말 우리 가족의 운명이 그리될려고 했는지 2009년 이민 열병이 끝나갈 때쯤 저는 아무 생각없이 호주 대학원으로 진학하는 동료가 치는 IELTS 시험을 같이 공부하게 되었고 주말에 서너번 공부한 후 시험에 붙었습니다. 원래 영어를 좋아하고 특히 시험식 영어에 나름 단련(?)된터라 쉽게 점수를 취득할 수 있었습니다. 이민 겸 대학원 진학 겸용으로 사용하려고(사실 돈이 아까워서) 아카데믹을 본터라 호주 유명 대학원 3곳에서 입학 Admission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뭐가 그리 잘 되려고 했는지 마침 이민 신청 시 정확히 근무 경력도 한달 차이도 없이 맞추어졌고 영어 점수도 갖춰졌고, 기술심사도 한달만에 끝이 났습니다. 이민 신청을 한 바로 다음날 이민법이 바뀌어 4순위에서 일약 2순위로 도약(?)합니다. 그리고는 1년여를 예상했던 기간이 불과 3달로 단축되었고 3개월 후 바로 영주권을 손에 넣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고는 한두달 후 다시 이민법은 닫혀 버렸죠. 마치 모든 것이 퍼즐조각을 꿰멘 것처럼 손쉽게 지나가 버렸습니다.
누구나 그렇듯 30여년을 살아온 터전을 버리기 싫었고, 그 사회에서 자라며 알게 모르게 터득한 지식과 경험 그리고 공감대를 버리고 새로운 곳으로 살러 간다는 것은 무척이나 두렵고 떨리는 결정이었습니다. 저 역시 제가 쌓아온 삶의 기록(문화 배경, 언어, 학력, 직업 경력, 직위, 인정 등)을 버리기는 너무나 아쉬웠습니다. 일년이 지난 지금 솔직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만 그 당시는 정말로 저만의 의지 100%라고 말하기 어려웠습니다. 마치 뭐에 홀린 듯 그리고, 잘 꿰맞춰진 퍼즐 조각이 그랬던 것처럼, 그 무언가가 저를 밀어내 버렸던 것입니다.
어찌되었든 이제 우리 가족은 호주 브리즈번에서 이민 1년을 맞았습니다. 저는 새 직장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한지 4개월이 지났습니다. 우리 아들 딸내미는 학교에서 무척 재미있게 지내고 있습니다. 영어도 빠르게 늘고 있구요. 한글도 잊지 않으려고 한글 책도 저녁마다 보고 있습니다.
태양이 따사롭게 내리쬐는 이곳 브리즈번을 무척 사랑합니다. 이 온화한 곳에서 우리 가족은 하루 하루의 기록을 써 내려가고 있습니다.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고 차곡차곡 지나올 세월들이 우리 가족의 역사를 만들어가겠죠.
가족의 행복과 나 자신을 위해서 이민오고자 했던 그 초심을 기억하고 최선을 다해 살고 싶습니다. 더 많은 시간과 더 많은 추억을 가족과 함께 나누어 가고자 노력할 것입니다.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