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생각들

여행을 계획하며

hiaaron 2013. 3. 14. 02:15

 

 

 

En   딸 키우는 재미가 좋다고들 말한다. 위 사진은 몇 달 전 딸내미가 뚝딱뚝딱 만들어준 카드다. 열심히 잔디 깎고 나무 가지 치고 집 정리한 다음 시원한 맥주 한잔 먹으라고 준 카드였다.
이것 말고도 집에 얼마나 많은 카드가 있는지 모른다. 뭔가 생각 날 때마다 이것저것 만들어내곤 한다. 손이 제법 야무진 셈이다. 얼마 전엔 본인이 닭띠라고 알려줬더니 닭 모양으로 허리띠를 만들어 웃음을 주곤 했다.

 

   우리 가족은 이번 달에 피지로 가족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그래서 이것 저것 예산을 잡느라 며칠째 머리를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사실 가족 여행 편히 갈 정도로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지는 않지만 이번달에 사라지는 항공권이 너무 아까워 살짝 억지를 부리고 있다. 더군다나 불과 두어달 전에 한국을 다녀오고, 이번 달엔 막내 돌잔치에 학비 납부도 돌아오는 달이라 이래저래 무리를 좀 해서 여유가 있지는 않지만, 허니문으로 갔던 피지를 10년 만에 꼭 다시 방문해 보고 싶어 무리를 하는 것이다. 달라진 점이라면 우리 부부의 외모 뿐 아니라 혹이 세 개 불어났다는 점이겠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직장이 항공사인 덕에 그나마 남들보다 한국, 호주 국내 또는 해외 여행을 저렴하게 할 수 있다.

 

   오늘 내가 좋아하는(그리고 종종 만나는) 한 블로거의 글에서 호주의 차일드케어 비용에 대해서 언급을 한 글을 보았다. 정부의 보조가 있지만서도 아이를 맡기고 부부가 맞벌이를 해야한다면 사실 양쪽 모두가 어느 정도 소득이 높지 못하면 집에서 전업 주부를 하면서 아이를 키우는게 더 나을 정도다. 이 모든 것이 양육 수당과 차일드케어 보조비, 그리고 부부 중 저소득자의 소득액, 마지막으로 부부의 합산 소득이 복잡하게 연관되어 있어서 그렇다. 물론 하루에 보통 10만원 정도의 차일드케어 비용이 가장 직접적인 원인이 된다. 한쪽의 Salary가 엄청 높아서 소득이 양육수당이나 차일드케어 보조비를 한푼도 받을 수 없는 수준(아이수에 따라 다르지만 15만불 이상)을 훨씬 상회한다면 이것만큼 해피한 케이스도 없다. 아이를 차일드케어에 맞기고 전업주부를 해도 부족함이 없을테니까 말이다.


   호주는 직업 차별이 거의 없다고 말한다. 수입 차이도 많지 않다고 말한다. 어느 정도는 사실이다. 카펜터나 플러머, 일용직 근로자들이 7-8만불 벌고, 동네 의사가 15-20만불 정도를 번다니 한국처럼 큰 차이가 있지는 않다. 그리고 여기에 소득 수준에 따라 정부가 주는 각종 복지 보조금, 연금 등을 고려하면 직종간 소득간 격차는 더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 실 예로 4-5만불 버는 가정은 아마도 세금 제하면 차라리 실업수당과 자녀 양육수당 받는 실업자 가족보다도 수입이 적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생활 수준은 어떨까. 생활 수준을 보려면 생활비를 대충 알아야 한다.
   가장 비중이 높은 것은 역시 렌트비 또는 모기지다. 호주 대도시의 렌트비는 대략 한달에 1500-2500불 수준이다. 모기지도 물론 얼마나 상환했는지, 얼마나 대출을 받았는지에 따라 다르겠지만 렌트비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인구밀도가 매우 낮고 나라가 큰 탓에 대중교통이 매우 취약하고 비싼 특성을 감안하면, 차량은 보통 한대로는 생활이 힘들다. 그러므로 대개 두 대를 끌어야 하는데 혀를 내두르는 높은 차값은 둘째치고, 기름값과 등록비 및 보험료, 정비비는 정말 허탈할 정도로 비싸다. 기름값을 제외하더라도 한대를 집에 세워 두기만 해도 등록비 약 1000불, 정기점검(주로 엔진오일 교환) 2회 500불, 종합보험 500-1000불 정도가 든다. 차가 두 대면 당연히 두 배. 전기, 수도, 부동산 세금 등 각종 고정비용도 무척 높다.

   우리 가족은 대략 한달에 한화로 700만원에서 800만원 정도를 지출하고 있다. 아마도 이렇게 말하면 조금 럭셔리한 생활을 하는게 아니냐고 반문하실 수도 있겠지만 천만에다. 우리 부부는 사치품하고는 거리가 멀다. 나는 가끔 아이패드 같은 수준의 가전 제품을 사긴 하지만 와이프는 흔한 장신구 하나 사지 않는다. 내 노트북은 산지 5년도 넘은 제품이다. 그냥 아이들 운동화 사고, 동네 쇼핑몰에서 가끔 옷 사고 외식은 피자나 브런치를 한달에 한 두번 즐기는 정도다. 어쩔 수 없어 차를 두 대 굴리는 것 외엔 숨만 쉬고 사는 셈이다. 영화를 언제 봤는지, 연극을 언제 봤는지는 기억조차 할 수 없다. 아마도 항공사 혜택이 없었다면 한국 한번 다녀오는 것도 몇년이 걸릴지 모를 일이다. 근래에 경험한 호주 물가의 아주 간단한 예가 하나 있다. 며칠 전 안경알을 하나 넣었는데(프레임은 기존 것) 250불이 들었다. 수입 고가 렌즈도 아니요, 고압축 렌즈도 아니요, 그냥 그저 그런 렌즈였다. 렌즈 얘기를 꺼내니 또 생각이 난다. 작년에 우리 가족 네명이서 스케일링하고 난 충치 하나 떼웠고 와이프는 마취 주사에 충치 하나를 떼웠는데 가족 모두 1500불이 넘었다. 물론 보험처리해서 얼마 안 내긴 했지만 비용이 이 정도 수준이다.

 

   사정이 이쯤되면 제아무리 수입이 높은 나라라고 해도 먹고 사는 것만 해결하고 나면 사실 남는 돈이 없다. 정부가 주는 보조금 때문이라도 아무리 최저 임금을 받는다고 해도 딱 입에 풀칠하고 거리로 나앉지 않을 정도로 살 수 있는 셈이다. 간단히 말해 빚좋은 개살구인 셈이다. 여기에 가끔씩 일어나는 이벤트 들, 예를 들면, 차를 새로 사거나, 병원에 목돈이 들어가거나, 컴퓨터를 구입하거나, 집 수리를 미룰 수가 없거나 하게 되면 그나마 수중의 푼돈도 사라지게 된다. 그러므로 대다수 호주인들에게 맞벌이는 필수요, 저축을 할 수 없는 이유인 셈이다.

   이런 이유로 인해 어느 집이나 거의 비슷하게 들어가는 생활비를 기준, 근처로 버는 가정과 그 이상을 버는 가정의 차이는 크게 벌어질 수 밖에 없다. 좋은 직장에 맞벌이 하여 합산 소득이 15만불 이상되는 가정이나 고소득 직업에 종사한다면 아이를 2만불짜리 사립에 보내고 해외 여행을 다녀도 돈이 남을 수 밖에 없다. 호주에도 싸고 비싼 물건이 있는건 사실이지만 동네마다 있는 대형 체인수퍼를 가지 않고 싼 물건 찾아 다니기도 쉽지 않고 기름값이 더 나갈지도 모른다. 또한 대도시에 1500불 이하 렌트는 구경하기도 어렵다. 먹고 사는 것에 너무나 많은 돈을 쓰다보니 많은 가정은 생활비를 충당하고 나면 남는 것이 별로 없게 되는 이유이다. 이 지점부터 생활 수준의 격차가 벌어진다고 보면 되는데, 외벌이나 낮은 소득의 맞벌이는 이 지점을 넘기가 참 어렵다. 특히나 이민 1세대라면 영주권을 얻기 전 비자 상태로 터무니 없는 대우를 받거나 영주권을 받은 이후에도 영어 장벽 때문에 더더욱 삶을 어렵게 한다. 어쩔 수 없이 생활비 부담을 위해 남과 더부살이를 해야 하고 투잡을 뛰어야 한다. 이게 호주의 현실인 셈이다. 그래서 더더욱 이민자들이 자녀 교육에 매달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막연한 환상을 가지고 이민병에 빠져들어 패기만을 믿고 호주를 오면 눈물 쏙 빠질 정도의 고된 삶과 금전적 손실을 피할 수가 없다.